자기의 신앙상을 지금의 실재처럼 그려보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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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신앙상을 실재처럼 그려볼 수 있을까! 베드로와 요한에게
서 배운다!
요한복음 21장의 하단부분에 이러한 기별이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같이 가는 길에서 장차 베드로는 십자가
에서 죽으리라(요 21:18)는 엄숙한 말씀을 하셨다.
뜻밖에 진실하신 스승의 말씀인 데다가 자신이 죽는다는 말씀
은 혼겁에 질린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놀란 베드로는 무엇인가를 되 묻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옆에 같이 가는 요한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이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요 21:31) 라고 물었다.
이때 주님은 서슴없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
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
21:22)고 하셨다.
마치 주님의 말씀은 요한은 오래 살게 할 것처럼 말씀하셨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의 말은 없지만 얼마나 인생 일대기를
두고 잊지 못할 노릇이었을까 싶다.
오늘날도 성경학도가 깊은 사고의 지름길을 가고 있는 자기 주
제의 내용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스승의 말씀 대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
혀 죽었고, 요한은 그때로부터 반세기 후 쯤에도 살아 남아있었
다. 그러나 이 두 사람 다 한결같이 주님을 연모하는 이들로 남
았다는 사실이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한편 예수님은 신인이시기에 만사를 훤하게 다 아실 것이 분명
하다.
요한은 요한복음의 말미에서 이런 기사에 대한 언급을 기록하
면서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
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함을 아노라’
(요 21:25) 고 썼다.
하물며 창조주이신 신인이신 주님이 우리를 아는 것일까 보냐.
낱낱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의 금사슬로 꿰고 계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말씀하신다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확하게 그
것들이 다 이루어지고 성취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매우 중요한 축이다.
그 실예 중 하나는 마태복음 24장의 예언의 성취에서 빛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계 1:1)려고 라고
하셨다.
계시록 시작부터 말미에 이르는 예언의 말씀에 관한 말씀이다.
‘계시’(revelation)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apokalipsis)라
한다. 계시는 주님에게서 온 것이다.
여기에서 ‘계시’는 ‘공개’라는 뜻도 있다. ‘열어서 알린다’는 것
이다. ‘계시록은 인봉된 책이 아니다.’(사도행적 584)
이 ‘공개’라는 오늘날의 의미는 ‘복음기별의 전파’라고 설명된다.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 신앙은 계시록에 집약된 말씀에 있다
라고 보여진다. 말세시대에 보내는 기별이기에 계시록에 집약
될 수 밖에 없다고 보아진다.
계시록은 우리의 마지막 날의 구원을 위한 승리와 축복의 말씀
이다.
예수님은 베드로, 요한에게 말씀 하시듯이 우리 개인에게 경의
말씀으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더디 믿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재림성도의 믿음의 자세이다. 깊이 신뢰해야 한다. 그리하면 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주님과 교회를 위해 공
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복음전도이다.
‘요한에게 이 비밀들을 나타내신 분께서는 부지런히 진리를 연
구하는 이들에게 하늘의 사물을 미리 맛보게 하실 것이다. 그
들의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열려있는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사도행적 573)
얼마나 뜻깊고 훌륭한 삶이겠는가! 싶다. 그 기별들이 말세를
만난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될 것이겠는가! 얼마나 영
적으로 부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는 각인의 몫에 달렸다.
모두가 하늘사물이 그려진 사랑이고 은혜롭기 만 한 것이다!
그런데 자기 신앙상, 미래상을 어렴풋 하지만 확실하게 보아지
는 비결은 몇가지(7가지) 수단이 자기 것이 되면 분명해진다.
영성의 분위기로 느끼고 확신하는 삶을 살게 한다. 풍요롭다!
주님이 자기의 생명이 되는 것, 성서진리에 몰입하는 것, 가정
사랑의 신앙주의로 사는 것, 조석예배를 철두철미하게 여기는
것, 교회출석을 성실하게 하는 것, 교회직책을 맡고 성실하고
충성되게 사는 것, 그리고 영혼구원과 전도활동에 자의적이고
기쁨의 활동으로 활발하게 이행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런 자는 자기 영성생활의 상을 자기가 뚜렷하게 그려보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실천해 보는 사람은 알 수 있다 라고 한다!
와! 놀라워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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